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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3주차. 싯다르타

by Havi 2019. 12. 28.

살아가면서 종종 영감을 주는 책들을 만나게 되면 몇 번씩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제서야 후기를 쓰게 되었지만...)싯다르타는 사실 두 번째 읽은 책이다. 처음 싯다르타를 읽었을 때는 뺨을 찰지게 맞은듯한 충격을 받았었다. 평범한 개발자의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스님의 삶(?), 깨달음을 갈구하는 구도자(?)의 삶은 새로운 시야를 알게 해 주었으며 책을 덮을 때쯔음에는 정신이 공허하며 구도자의 삶을 몸소 느낀 것처럼 나 자신도 마음속의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책을 읽은 지 2년 정도 지난 지금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여전한지 내 생각은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 궁금하여 다시 책을 펴게 되었다.

자아 성찰에 대한 목표

소설 속의 주인공 싯다르타에게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부터 벗어나고,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마음을 텅 비운 상태에서 평정함을 얻는 것.

정신없이 목표와 돈을 쫓는 현대인들에게는 너무나 동떨어진 사상이다. 사실 현대의 스님들도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비우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본질적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싯다르타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비어있는 상태의 나를 만들고 평온함을 찾는것이 인생의 숙제이며 전부였다. 도대체 내안의 평온함과 그 깨달음이 무엇이길래 저리도 갈구하는 것인가?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본질적인 것. 즉, 길 중의 길은 발견하지 못할거야.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오로지 앎뿐이며, 그것은 도처에 있고, 그것은 아트만이고, 그것은 나의 내면과 자네의 내면, 그리고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있는 것이지.

이 구절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부모와 같이 누군가는 열심히 상대방을 가르치려 하지만 상대방은 그 즉시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상대방은 살아가다 보면 그릇이 점점 커지게 되고 받아들임의 시기가 도래했을 때 그때의 가르침, 앎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러한 기다림은 굉장히 어렵다. 특히 나에게는 성질급한 면모가 많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더 빨리 가르쳐 주고 몸소 느끼게 해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모름지기 현명한 사람은 상대방이 준비될 때 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언제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깨달음

성인 고타마를 만나는 짧은 시간동안 싯타르타는 자신의 지식을 뽐냈었다. 결국에는 현명한 세존 고타마의 미소와 인내함을 보며 자신이 나 자신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원인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생각이라고 여겨졌으며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느낌이 인식으로 바뀌어져서 사라지는 일이 없이 본질적인 것이 되고 그 인식 속에 있는 것이 빛을 발하기 시작할 것이다.

고타마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해 깨닫기 시작하며 싯다르타는 자신의 내면 깊이까지 파고들며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마침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나 자신한테서 배울 것이며, 나 자신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 자신을,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아내야지.

내면의 소리

싯다르타는 마음이 이끄는 데로 평범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상인의 밑으로 들어가 부를 거머쥐게 된다. 항상 마음속의 여유가 넘치던 싯다르타는 점차 속세에 찌들게 된다.

매번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그 밝고 확실한 음성이 침묵을 지키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사실만을 깨닫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손해를 보게 되면 침착함을 잃어버렸으며, 기한을 어기는 채무자에 대한 참을성도 잃어버렸으며, 거지들에 대한 선량한 친절함도 잃어버렸으며..

점점 자신의 본질을 일어가던 싯다르타는 어떤날 명상에 잠기게 된다. 오랜세월 동안 자신의 내면이 어떻게 끝장이 나는가를 느끼며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처음날부터 자신이 걸어온 모든 인생 행로를 천천히 더듬어 본다. 회상을 하던 그에게 점차 내면의 소리가 들려온다.

사실 그는 속세의 쾌락과 부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어린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체험하고 나서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닌 앎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과한 욕망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자신의 평온함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너무 많은 지식이, 너무 많은 성스러운 구절이, 너무 많은 제사의 규칙들이, 너무 많은 단식이, 너무 많은 행위와 노력이 자기를 방해하였던 것이다. 자기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언제나 가장 현명한 자였고, 언제나 최고의 열성파였으며...자기는 단식과 참회로써 그 자아를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넘치는 그의 지식과 행동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비워야 채워진다는 앎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

이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롭다!

싯다르타가 처음 사문이 되고 속세의 삶을 살다가 다시 구도자의 삶으로 돌아오는 자신의 인생을 강물에 비유하였다. 불교의 대표적인 윤회 사상이다. 사실 윤회 사상에 대해 크게 아는 바가 없어서 그런지 찬물을 머리에 부어버린 것처럼 짜릿한 충격을 받았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돌고 돌아 다시 온다는 깨달음? 행복한 나날들이 영원할 것 같지만 다시 힘든 순간이 오고 그 힘든 순간도 영원할 것 같지만 또 행복한 날이 오고, 밤이 오고 아침이 오고 매일 매 순간 윤회라는 굴레는 반복된다. 영원할 것 같은 삶도 언젠가 그 끝이 있듯이 반복되는 일상은 계속된다.
어찌 보면 지루한 반복이며 똑같아 보이지만 매일은 확실히 다르다. 똑같은데 다르다. 심지어 흘러가는 강물조차 어제와 다른 물이며 항상 새로운 것이다. "매일을 똑같이 사느냐 새롭게 사느냐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인생의 묘미이다.

사실 싯다르타 후기를 쓰는게 참 어려웠다. 다른 책들의 경우 지식을 전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 어느정도 정리하기도 쉽고 있는 그대로의 느낌과 내 행동을 비유삼아 써내려 가기 수월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지혜를 전달하는 책이다. 구도자의 삶 속에서 배움의 길을 떠나고 자연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는 현대인이 마주하기 쉽지 않은 인생 이야기였다. 경험하지 못한 지혜는 그저 지식일 뿐이며 몸소 체험하고 앎을 알아야 온전히 지혜가 되는 것이다.
확실히 이렇게 책을 읽고 글로 무언가를 남기고자 한다면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되짚어 보며 음미하게 된다. 결국 나만의 의미를 남기게 되었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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